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에머리빌 역에 도착했다.
짐을 부치고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기차역인데 화장실 문을 닫는다고? 한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는 미국이니까. 아까 짐을 보낸 창구에 가서 화장실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매번 바뀌는 것 같아.
나중에 탈 열차는 Coast Starlight라는 열차다.
LA에서 출발해 종점인 시애틀까지의 장거리 열차로 나는 그 구간 안에서 에머리빌포틀랜드에 탈 예정이다.
노선도를 보면 참 길다.
샌프란시스코에는 Amtrak 기차가 직접 들어가지는 않고 자체 버스로 에머리 빌딩까지 태워주는 서비스가 있다.
그래서 암트랙 홈페이지에서 SF로 검색하면 에머리빌역이 대신 나타난다.
전체 노선 중 대략 절반 정도 타는 것 같은데 시간표를 보면 무려 17시간 정도 걸린다.
일반 좌석으로는 절대 탈 수 없는 거리라 침대차를 예약해 두었다.
조금 할인받아서 304달러에 예약했어. 아침, 점심 두 끼를 올리고 이동하면서 숙박도 해결하지만 이 정도면 저렴하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짐도 보내고 멍하니 역 사진도 찍고 놀고, 아몰트락 코로나 설문조사도 하다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검색해보니 역 바로 앞에 서브웨이가 있어서 샌드위치를 사러 갔다.
한국에서 많이 먹던 스파이시 이탈리안 음식을 주문했다.
직원이 소스를 뭘 넣어줄까? 듣고 후추만 많이 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후추를 뿌리는 것을 보면 만족하지 못해 more pepper plz!
를 네다섯 번 정도 외쳤다.
(이봐, 이건 말도 안 되는 후추야) 직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말대로 후추를 더 많이 뿌려줬다.
땡큐!
를 외치며 샌드위치를 싸서 역 앞에 서서 먹었다.
수박맛 탄산수와 먹었더니 맛있었다.
슬슬 기차 도착 시간이 가까워져서 역 플랫폼에 나가 구경했다.
미국 철도역에도 기인은 있었다.
나무에 어슬렁어슬렁 매달려라.
드디어 기차가 도착했다.
이런 장거리 열차는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차표를 들고 물어 객차 안으로 들어왔다.
좁은 복도 양쪽에 침실이다.
객실에 들어가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의자가 아주 넓고 쾌적하네.
원래 2인실이라 위에 2층 침대를 내려 설치할 수 있다.
생각보다 힘드네.
궁금해서 2층 침대에 올라가봤어. 객차 안에 샤워시설이 있어서 그런지 수건도 충분히 있고 떨어지지 않게 벨트장치도 있었다.
밑에서 자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내려와 침대를 다시 놓았다.
1층 의자에 앉으면 편안하다.
내일 밥은 뭐가 나오는지 확인해줘.
졸다가 캘리포니아 내륙으로 들어가 새크라멘토 역에 도착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라고 한다.
농구팀 새크라멘토 킹스만 알고 있었는데 몰랐다.
열차는 잠시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해 점점 lte 전파가 나오지 않는 산간 오지로 들어가는 듯했다.
역시 Tmobile은 도시를 벗어나면 폭발하지 않는구나. 조금 비싸더라도 AT&T USIM을 사둘 걸 그랬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고 졸려 침대를 넓혀 설치했다.
객실 밖으로 나와 물을 길어왔다.
샤워시설도 보여서 구경하려고 했는데 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 그냥 객실로 돌아왔다.
내일 도착하는 포트랜드 교통카드도 미리 사서 애플월렛에 넣어두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면 캘리포니아를 떠나 오리건주로 들어갈 것이다.
길고 길었던 오늘도 끝!